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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국제중재 허브, 싱가포르를 가다]② ‘소송’보다 ‘조정’ 택하는 글로벌 기업... 年 분쟁 가액만 3조원
작성일 : 2022-01-04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법정’이 아닌 런던, 파리, 제네바,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비공개로 진행되는 ‘국제중재’(International Arbitration)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제중재는 양측이 상호 신뢰 하에 소송을 하지 않고 제3자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대체적 수단이다. 중재는 소송과 달리 단심제로 이뤄져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신흥 중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현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우리나라 변호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총 5회에 걸쳐 싱가포르가 국제중재 허브가 된 비결은 무엇인지, 현지에서 발로 뛰고 있는 변호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들어본다. 우리 국제중재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미래를 조망해본다. [편집자주]


“2014년 SIMC(싱가포르국제조정센터) 출범 직후엔 연간 5건이 접수됐어요. 그런데 요즘은 일주일에 2건씩 들어옵니다.”


조지 림(George Lim) SIMC 의장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싱가포르 맥스웰 챔버스 스위츠에서 조선비즈 기자와 만나 최근 조정(Mediation) 신청 건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분쟁 관련 영역에서 조정이 해결 수단으로 급부상한 셈이다. 싱가포르 고등법원이 분쟁가액 기준 25만싱가포르달러(한화 2억2000만원)가 넘어가면, 조정부터 받도록 강하게 유도한 결과다.


◇ 베트남 합작투자 분쟁 겪던 韓·美 기업... 조정으로 해결



조지 림 SIMC 의장은 국제중재 시장에서 아시아, 특히 싱가포르와 한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칠판 위로 조정(Meditation)과 아시아(Asian)가 합쳐진 의미의 '메디에이션(MediAsian)'이라는 단어가 보인다./사진=이미호기자 


통상 제3자의 개입에 의한 분쟁 해결 방법은 알선, 조정, 중재 및 소송 등으로 나뉜다. 중재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판정부 결정을 따라야 하지만, 조정은 양측이 자율성을 갖고 합의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보다 유연하다. ‘법대로 가자’며 소송으로 직행하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어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의지도 반영됐다.


분쟁 가액을 따져봐도 최근 신청 건수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SIMC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분쟁 가액은 약 62억달러(한화 7조3749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분쟁 가액만 31억달러(한화 3조6874억원)에 달한다.


조지 림 SMIC 의장은 “조정의 장점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결과를 도출해 상대방과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법정에서 이뤄지는 소송이나 중재처럼 경직된 분위기가 아닌 편안한 분위기에서 양측간 합의를 최대한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조정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과 투자자들이 소송과 달리 민감한 내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조정을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영미법(Common law)상 재판 개시 전 소송 당사자가 갖고 있는 증거와 자료를 공개하는 디스커버리 과정을 거치는데 이른바 대륙법(Civil Law) 국가에 속한 기업들로서는 꺼려질 수 있는 부분이다.


SIMC는 지난해 인도 기업과 일본 기업 간 합작 벤처 계약을 둘러싼 복잡한 분쟁을 해결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양측은 코로나 상황에서 소송까지 가지 않고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양측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접수한 지 이틀 만에 ‘원칙적으로 해결’에 합의했다. 이후 조정 과정을 통해 6주 만에 구체적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 기업도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한 사례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당사자는 베트남 합작 투자 회사를 설립하고 10년간 상품 제조 공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사업 성과가 좋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주주계약 조건을 위반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중재인은 차를 끓여 내면서(a tea break) 분쟁에서 누가 승소하든지 여전히 주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 서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결국 미국측이 한국측 지분을 매입하는 대신 한국측이 공장 일부 고객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반영, 구매 가격을 수정했다. 또 한국측의 요구대로 직원을 해고하지 않기로 했다.


SIMC는 해당 사건을 대한상사중재원(KCAB International)에서 열도록 주선했고, 양측 당사자들은 17개 관할 구역 70명의 중재자로 구성된 SIMC 패널에서 중재자를 선택했다. ‘중재에 차 한잔만 필요했던 셈’이다.



이승민 법무법인 피터앤김(Peter&Kim) 싱가포르 사무소 대표변호사/사진=이미호기자 


◇ 현지 변호사들 “중재하기 좋은 환경”... 두각 나타내는 한국 로펌들


이처럼 싱가포르의 법률 체계는 기업과 투자자의 분쟁 해결을 지원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발전·진화했다. 이에 전문화된 인력 또한 자연스럽게 싱가포르로 유입되고 있다. 프랙티스(실무) 방법과 최신 경향을 공유하는 국제중재 특성상, 변호인들 커뮤니티는 돈독한 편이다.


한국 로펌들은 대부분 2020년부터 싱가포르 현지에 거점을 두기 시작했다. 법무법인 피터앤김(Peter&Kim)이 그해 4월 현지에 사무소를 냈고, 관련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김앤장법률사무소도 같은해 9월, 현지에 사무소를 개설, 중재 관련 사건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밖에 법무법인 바른도 사무실을 내고 활동중이며, 올해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현지 지사를 만들 계획이다.


SIAC 한국 평의회 위원과 SIMC 전문 조정인을 겸하고 있는 이승민 변호사(피터앤김 싱가포르 사무소 대표)는 “늘 청년 변호사 일자리에 대한 고민을 해왔는데 홍콩·호주·인도·일본의 국제중재 변호사들과 함께 일하며 ‘이곳에 답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한국 변호사들은 세계 그 어느 변호사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우수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간 무역분쟁을 심리하는 WTO 패널리스트로 일했던 케리스 탄(Charis Tan) 변호사는 ”피터앤김은 민법(대륙법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관습법(영미법) 전문지식을 결합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면서 “피터앤김이 세계 30대 중재 로펌 중 하나인 핵심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국제중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헤이즐 탕, 폴 샌도시엄, 케리스 탄 변호사/사진=이미호기자


현지 변호사들은 싱가포르가 ‘비즈니스 하기 좋은 법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싱가포르 4대 로펌인 로젠탈 상하이 지사에서 건설분야와 국제중재 분야를 맡다가, 지난해부터 ICC 싱가포르 지사에서 카운슬(Counsel)로 일하고 있는 헤이즐 탱(Hazel Tang) 변호사는 “싱가포르 법률 관련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기관인 아카데미 오브 로(Singapore Academy of Law)에서 매년 600개 회사를 상대로 ‘싱가포르가 중재지로서 얼마나 중립적이고 효율적인지’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중재협회(AAA)의 국제 담당 부서인 국제분쟁해결센터(ICDR)의 마이클 리(Michael lee) 변호사는 “이른바 국회와 법원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모두 있다. 당사자를 대리하는 변호인들이 있고, 사건 결정을 내리는 판사들이 있다”면서 “싱가포르는 소송 대리인과 중재인이 활동하기에 아주 적합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국제중재 전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환경도 조성돼 있다.

영국공인중재인협회(CIArb) 싱가포르 지사의 의장을 맡고 있는 폴 샌도시엄(Paul Sandosham)은 “각국 변호사를 대상으로 국제중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육 지원을 하는 데 열기가 뜨겁다”며 “150개국 1만7000명이 회원이며 중재인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이는 중재인 선임시 기초 자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조선비즈 이미호 기자 (best2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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